루마니아 민속

1. 어린양의 공간

루마니아의 문화철학자 루치안 블라가(Lucian Blaga)에 의하면,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민속 음악인 도이나(Doina)를 들어보면 곡조와 가락이 루마니아의 공간적·지형적 특색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도이나는 루마니아의 민속 서정시에 음률을 붙인 노래로, 회한, 그리움, 아픔, 사랑 등을 주로 주제로 삼고 있다. 서정적인 선율과 풍부한 표현 그리고 전통적인 운율적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도르 (dor)’ 라는 루마니아 고유의 감정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루마니아 민족의 음악적인 풍습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블라가는 '도이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이나’는 기성복을 입은 도시인들이 멋들어지게 부르는 세련된 노래가 아니며, 도시 변두리의 집시들이 아랍풍의 가락을 섞어 부르는 흥겨운 노래도 아니다. ‘도이나’는 일생동안 언덕과 계곡을 옮겨 다니며 가축을 돌봐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루마니아 목동들과 시골 아낙들이 자신들의 핏속에 흐르는 감성을 구성진 목소리로 담아낸 표현력 강한 노래이다. [...] ‘도이나’에는 무겁다고도 할 수 없고, 가볍다고도 할 수 없는 우수(melancolia)가 흐르고 있으며, 끊임없이 물결치는 듯하게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다. 언덕을 하나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나고 그 언덕을 넘으면 넘어야할 언덕이 또 다시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이 운명적 장벽인 끝없는 언덕들을 넘어서 보고자 하는 갈망과 그러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회한(dor)이 서로 교차하며 빚어내는 미묘한 감정들이나, 평생을 똑같은 언덕과 산을 오르고 내려오기를 단조롭게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영혼들의 애잔한 슬픔이 도이나의 '강강약(dactil)', '약약강(anapest)'의 곡조 속에서 끊임없이 고저를 반복하는 것이다.”   

블라가는 ‘도이나’에 내재된  끊임없이 고저를 반복하는 루마니아의 원초적 공간에 ‘미오리짜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어린양’으로 번역될 수 있는 <미오리짜>는 오랜 옛날부터 루마니아 민족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불리던 목가풍의 담가(譚歌)로 루마니아 민족의 자연 친화적 심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민요라 할 수 있다. 이 민요의 첫 구절은  “Pe―un picior de plai / Pe―o gură de rai / Iată vin în cale / Se cobor la vale (산기슭 작은 언덕 곁 / 낙원의 문지방 앞 / 오솔길 따라 / 계곡을 내려오네.)“로 시작하는데 위 시구에서 'Plai'는 산 위의 평평한 지형, 특히 카르파치(Carpaţi) 산맥의 언덕을 가리키는 말로, 푸른 초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확 트여있으며, 계곡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가 흐르는 지형을 이른다. 'Vale'는 'Plai'와 'Plai'가 물결치듯 내려오면서 서로 만나는 낮은 곳, 즉 계곡을 가리키는 말이다. 블라가가 지칭한 ‘미오리짜의 공간’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원과 숲과 언덕과 계곡이 고저를 반복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며 ‘도이나’의 노래 가락처럼 리듬감 있게 오르락내리락 물결치는 듯한 지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 ‘미오리짜의 공간’은 루마니아의 목동들이 양과 가축을 돌보고, 농부들이 곡물과 채소를 가꾸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중심지이며, 다치아(Dacia)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로마인들과 섞이며 형성된 루마니아 민족이, 슬라브, 헝가리, 터키 등의 지배와 영향 아래서도 결코 떠나지 않고 지켜왔던 어머니 모체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미오리짜' 민요의 두 번째 행에서 ‘낙원(rai)의 문지방’으로 표현 된 것처럼 이상향의 공간이기도 하다. 미오리짜 민요의 주인공 몰도베안 목동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Plai’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Plai'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대자연과의 아름다운 결혼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몰도베안 목동과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인들 역시 이 'Plai'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으며, 삶과 죽음을 초월해 유기적 관계를 영원히 지속시켜야 할 숙명적 공간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미오리짜의 공간’은 단순히 루마니아인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지형적 특색만을 함축한 용어가 아니라 루마니아 민족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원초적 고향의 관념적 형상 즉, 루마니아 민족의 무의식에 축적되어 있는 ‘공간의 지평‘을 말한다. 루마니아인들에게 ’미오리짜의 공간‘이 제공하는 지평은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민족의 동질성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함께 느끼게 해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블라가는 보고 있는 것이다.

‘미오리짜의 공간’이 지닌 특성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비가시적인 무형의 민속예술에서만이 아니라 루마니아인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루마니아의 가옥이나 헛간 등의 배치 구조나 위치 등이 어떤 양식으로 대자연과 어우러져 있는가를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미오리짜의 공간’이 루마니아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루마니아 산간 마을의 산자락을 둘러보면 완만한 앞산의 꼭대기에서부터 계곡 아래까지 양치기들의 집들이 거리를 두고 모습을 살짝 드러내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일 것이다. 언덕과 계곡이 만드는 리듬에 맞춰, 어떤 집은 산꼭대기에, 어떤 집은 산등성이에, 어떤 집은 계곡의 아래쪽에, 서로 충분한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옆쪽의 언덕으로 눈을 돌리면 역시 방금 전에 보았던 풍경과 비슷하게 양치기들의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산 아래 쪽의 평지 쪽으로 눈을 돌려 집들이 놓인 모양새를 관찰해 보아도 역시 언덕과 계곡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리듬감을 계속 유지하면서 집들이 여유로운 공간을 두고 세워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린양의 공간 1  : 루마니아 북동부 부코비나(Bucovina) 지방의 산간 마을

어린양의 공간 2  : 부코비나 지방의 산간 마을

어린양의 공간 3  : 부코비나 지방의 산간 마을

어린양의 공간 4  : 부코비나 지방의 산간 마을

[루마니아인들은 마을에 길을 막고 있는 큰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를 치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돌아서 길을 낸다. 언덕을 깎아 땅을 고른 뒤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언덕의 중간 중간에 원래부터 평평했던 곳을 찾아 집을 짓는다. 집들이 띄엄띄엄 지어져 있기에 배치가 무질서해 보이지만 도리어 이것은 자연의 원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진정한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어린양의 공간 4  : 부코비나 지방의 산 언덕

[부코비나의 맑고 푸른 풍경들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고산 지대의 양치기 : 트란스 퍼거라쉬

[해발 2500m의 고산 지대로 한 여름인데도 만년설이 남아 있다]

건초 작업을 하는 루마니아 농부들

[루마니아는 아직까지도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농부들은 많은 땀을 흘리며 건초 작업을 한다. 그러나 헝가리만 가 봐도 건초 작업은 완전히 기계화 되어 있으며, 들판에는 두루마리 식으로 깔끔하게 말아져 있는 건초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루마니아 북서부 러푸쉬(LĂPUŞ)지방의 오후 풍경


[동창에 해가 뜨면 고용된 몇 명의 목동이 마을 소들을 모두 몰고 산으로 나갔다가 해질녘이 되면 다시 마을로 데리고 들어온다. 소들은 떼 지어 마을로 들어 온 다음에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미오리짜의 공간'이 주는 영향에 의해 발현되는 루마니아 민족의 독특한 문화 양식은 비단 고저의 지형적 특색을 보이는 까르파치 산맥의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고. 루마니아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대초원지대이거나 산악지대이거나 강가이거나 바닷가이거나를 막론하고 어디서든지 비슷한 문화 양식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언덕과 계곡이 없고 ‘미오리짜의 공간’이 지닌 지형적 특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의 루마니아 마을에서도 산간지대와 거의 마찬가지의 양식으로 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집들이 밀집되어 붙어 있지 않고 서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는 밭이나 정원 등 초록의 공간이 마치 강세가 없는 음절들처럼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지금은 평야지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영원히 물결치는 듯 고저를 반복하는 ‘미오리짜의 공간’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기에, 미오리짜의 공간을 평야지대에 까지 그대로 옮겨다 놓게 된 것이다. 이는 루마니아인들의 일부가 ‘미오리짜의 공간’인 ‘Plai’에서 살아가는 것을 오래전에 중단하였다 할지라도 선조들에게 이어받은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Plai’가 아련한 이상향의 기억으로 계속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루치안 블라가는 ‘미오리짜의 공간이’ 루마니아 민족과 다른 민족을 구별 지을 수 있는 루마니아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 양식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동일한 지형의 지역에서도 각 민족의 무의식 속에 퇴적된 공간적 지평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 양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적절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트란실바니아 지방에는 루마니아인들 뿐 아니라 헝가리인, 사스(sas)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중 사스인들은 독일의 작센지방에서 기원 후 1200년 경 루마니아의 평야지대로 이주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색슨계 주민인데,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마을과 루마니아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의 가옥 배치 양상이 같은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도 각기 다른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루마니아인들의 마을은 집들이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지어져 있으며 낮은 담장 사이로 집 안의 정원이 보이는 반면, 사스인들의 마을에서는 집들이 서로 쇠사슬의 고리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높은 돌담들로 막혀 있어서 초록의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사스인들이 오래 전에 자신의 고향을 떠나 먼 이국 트란실바니아의 낯선 어느 한곳에 정착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돌로 높고 웅장한 건물을 세워 자연 앞에서 인간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고딕(Gothic) 문화의 잔재가 여전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지도상 루마니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시비우(Sibiu) 외곽의 사스인 마을

[루마니아 전통 마을의 전원적이고 여유로운 가옥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집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외부와 내부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사스인들이 세운 메디아쉬(Medias)의 고성 : 루마니아 중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

[독일 작센 지방에서 이주한 사스인들은 농사나 목축 등의 생산적인 일을 하기 보다는 상업에 종사했다. 이 지역의 특산품을 저 지역에 고가로 팔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성은 사스인 상인집단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이다.

드라큘라라고 알려진 블라드 쩨뻬쉬(Vlad Tepes) 영주가 루마니아의 국민적 영웅이었지만 서방세계에는 잔혹하고 냉혈적인 흡혈귀로 알려지게 된 주요 원인이 바로 이들 사스인들에게 있다. 블라드는 1460년 경, 작센계의 사스인 상인 그룹과 정책상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들을 꼬챙이로 찔러서 대량 처형 하였고, 그 뿐 아니라 400명의 작센계 카톨릭 도제를 산 채로 태워 죽이기도 했다. 루마니아 내에서 밀매와 무관세 무역을 행하며 막대한 부를 축척하는 색슨계 상인들 때문에 루마니아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이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던 블라드 쩨페쉬는 결국 작센계 상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여 루마니아 인들의 경제 상황을 호전시키려 하였다. 이는 작센계 사스인 상인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작센계 상인 집단은 블라드에게 노골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블라드는 반항하는 사스인들을 잡아 잔인하게 처형을 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을 기록한 게르만의 연대기에는 당연히 블라드 쩨뻬쉬를 루마니아 민족의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처참히 죽인 사악한 악마 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연대기들의 자기 중심적이고 지극히 주관적 서술들 때문에 블라드 쩨페쉬는 서방세계에 잔혹한 인물, 즉 흡혈귀 드라큘라로 묘사 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루마니아 마을의 담장

[트란실바니아의 사스인들이 높고 견고한 담을 두른 집과 요새 같은 교회를 건축하여 전쟁 등의 재난에 대비하는 것과 달리 루마니아아인들은 허술한 집을 짓고 살다가 전쟁이 닥치면 집과 교회 등을 마을에 남겨 놓고 숲으로 피신한다. 루마니아인들의 집들과 교회는, 마치 씨앗이 뿌려지고 자랐다가 베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밀처럼, 지어졌다 허물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스인의 견고한 집은 영원을 표방하지만 결국은 사라질 유한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어졌다 허물어졌다 다시 지어지는 루마니아인들의 허술한 집은 임시적으로 보이지만  자연계의 영원한 순환을 모방하고 있기에 무한성을 지닌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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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마니아의 수도원

루마니아 문화 양식의 성향은 한마디로 성(sacru)과 속(profan)을 대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화합시키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루마니아의 다수 종교인 동방정교에도 녹아들어있다. 루마니아 수도원 외벽의 프레스코 성화((聖畵)들이 지닌 철학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러한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 서유럽의 성당들이 대부분 성당 내부에만 프레스코 성화들을 그려 놓은 반면 루마니아의 수도원들 특히 부코비나 지방에 있는 수도원들은 교회의 내부뿐 아니라 외벽에도 프레스코 성화를 그려 놓았다. 바실리스크나 고딕 양식의 교회들은 교회 안과 밖을 벽으로 철저하게 분리 시켜 놓고, 교회의 안은 성스러운 초월의 공간이며 교회의 밖은 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속적인 현세적 공간일 뿐이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고딕 교회의 벽은 성과 속을 분리시키는 차단 장치이며 교회의 문은 속에서 성으로 통과하는 검열의 관문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루마니아 수도원 외벽의 프레스코 성화들은 벽으로 인해 단절된 성과 속을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하나로 화합시켜 주는 상징이 된다. 교회와 자연과 인간은 교회 외벽의 프레스코 성화들을 통해 유기적 관계로 다시 묶여지게 된다. 성화들을 교회의 밖에 그려 놓은 것은 신의 은총과 성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꼭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전부터 루마니아인들은 성전(聖殿) 안이 아니라 자연의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회 외벽에 성화를 그렸던 것이다.

몰도비짜 수도원 (Manastirea Moldovita)

[루마니아 민중들의 교회는 나무로 소박하게 지어져 있으나, 수도원들은 대부분 돌로 웅장하게 지어져 있다. 루마니아 북동부 부코비나 지역의 대부분의 수도원들은 외세, 특히 터키와의 전쟁을 신앙의 힘을 통해 승리로 이끌고자하는 몰도바(Moldova) 공국 영주들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몰도비짜 수도원 내부



보로네쯔 수도원 (Manastirea Voronet)

[루마니아 북동부 부코비나 지역의 대표적 수도원 중 하나인 Voronet (보로네쯔) 수도원 : 이 수도원의 외벽 프레스코화는 독특한 푸른색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푸른색의 색감은 미술계에서 The Voronet Blue라는 전문용어로 지칭되고 있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색처럼 같은 색감의 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1547년에 건축된 Voronet (보로네쯔) 수도원은 현재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수체비짜 수도원 (Manastirea Sucevita)


수체비짜 수도원 (Manastirea Sucevita)


푸트나 수도원 (Manastirea Putna)

[루마니아의 수도원들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수도원이며, 몰도바(Moldova)의 쉬테판 대제(Stefan Cel Mare 1457-1504)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도원의 벽화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수도원을 청소하고 있는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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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루마니아의 전원적 문화

서유럽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두어 인간은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피조물인 반면, 자연은 인간을 위해 신이 허락한 이용물 즉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라고 인식하였다. 서유럽 여러 민족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오용하고 그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되는 문화 양식을 ‘문명’이라 불러 왔으며,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일부분으로 여기고 자연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문화 양식을 ‘미개’니 ‘야만’이니 폄훼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유럽이며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긴 하지만, 루마니아의 문화는 서유럽과 같은 인간 중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동시에 환경 파괴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 문화가 아니라, 자연 중심적이고 감성적인 동시에 환경 친화적인 양상을 보이는 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루마니아의 문화적 특색은 물질을 우선시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논리로 따지고 보면 문명의 지각생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극단적이 예를 들어 현재 루마니아는 도로를 포함한 사회 기간 시설이 서유럽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는 시골 마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형편이다. 또한 루마니아의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루마니아가 참으로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역사이래 루마니아인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 "우리는 숲의 형제며 친구이다" 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숲의 혜택, 자연의 혜택 속에서 굳이 물질덕 축적을 목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카르파치 산맥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철따라 양떼들에게 풀을 먹이고, 따뜻한 햇빛과 알맞은 강수량에 의해 맛있는 포도를 얼마든지 수확하며 살았다. 조선왕조 실록에서는 "늑마니(루마니아)"라는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먼 서쪽에 있는 늑마니 나라는 집안의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 없으며 누구든 손님으로 융숭히 대접한다". 이들의 삶은 나름대로 행복했으며 사람들도 순수했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도 루마니아에는 숲이 많다. 개발이 안된 탓이겠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 일지도 모른다. 수도 부쿠레쉬티에도 공원이 참 많다. 도시 한복판에서 동서남북 어디로 발길을 향하던지 도보로 5분 거리면 아름다운 공원을 만날 수 있다. 공원에는 남들이 모두 일할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물질을 우선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해가 안갈 수도 있다. "돈벌 시간에 한가하게 공원에서 일없이 노냐, 저것들 한심하군 ?" 하면서 혀를 내두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돈이 우선이 아니고 인간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을 위해 시간과 삶을 모두 뒷전으로 미루는 어리석음을 그들은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루마니아는 유럽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 웅장한 건축물도 없고 기념비적인 예술품들도 많지 않으나 상대적으로 민족적 전통과 민속은 잘 보존되어 있다.

CLUJ-NAPOCA시 외곽에 위치한 트란실바니아 민속 공원(Parcul Etnografic) 입구



마을 풍경

[루마니아 시골에는 마당에 건초 더미를 모아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모습이다.]

마을 지주의 집 대문

[원래 루마니아 서민들의 집은 대문이 작고 나무 울타리가 낮게 둘려 있는 것이 특성이다. 그러나 지주들의 집 대문은 나름대로 웅장하게 세워 놓았다.]

지주의 집 마당

[지붕이 비늘 모양의 나무 조각으로 덮여있다.]

나무 교회와 트로이짜

[루마니아 정교의 교회는 나무로 지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트로이짜 1

[루마니아에서는 어떤 마을이던지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트로이짜 (Troiţa)’라고 불리는 작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트로이짜는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과 마을을 나가는 사람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장승과 비슷한 개념을 지닌 조형물이다.  트로이짜는 보통 십자가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데 그 주위를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하거나 돋을새김 한다. 마을마다 트로이짜의 모양은 제각각이며 십자가 주위의 장식 문양도 천차만별이다. 순수하게 기독교적인 상징 문양만을 채택한 트로이짜가 있는 반면, 태양, 우주목(宇宙木),  ‘영혼의 새‘, 용 등 고대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정되는 다양한 문양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뱀, 말, 꽃 등 동물과 식물의 문양이 기하학적으로 장식되어 있는 트로이짜들도 많다. 트로이짜뿐 아니라 일반 집과 교회에서도 이러한 문양의 장식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트로이짜 2

[트로이짜는 보통 나무로 만드는데 돌로 만드는 것도 가끔씩 보인다.]

트로이짜 3

[루마니아 북서부 마라무레쉬(Maramures) 지방의 슈가탁(sugatag) 마을에서...]

나무교회 1

나무교회2

[자신들을 숲의 형제라 불렀던 루마니아 민중들은 나무를 가장 중요한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


나무 수도원의 내부

[교회 내부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맨 안쪽에 제단(altar)이 있고 중간에 지성소(naus)가 있으며, 입구에는 성소(pronaus)가 있다.]


브르사나의 나무 수도원

[최근에 관광용으로 지어진 수도원으로 화려해 보이기는 하나 루마니아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은 아니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통적인 대문

[루마니아 인들의 대문은 세계의 중심(자기 집)으로 통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 남과 나를 구별하는 단절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개구멍(?)

[루마니아인들은 문을 통하지 않고도 아무 집이나 들어 갈 수 있게 울타리 사이 사이에 이런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마을의 작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만든 다리

[초라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정겨운 느낌이 든다.]

서민들의 집들

[지주의 집 지붕이 비늘 모양의 나무 조각들로 엮여 있는 반면, 서민들의 집 지붕은 밀짚으로 덮여 있으며 울타리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물레방아

창고

[옥수수와 곡물을 저장하는 야외 창고]

마라무레쉬 지방의 전통 가옥

[루마니아 북서부의 마라무레쉬 지방은 겨울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붕을 저렇게 급경사로 만들지 않으면 지붕 위에 눈이 쌓여 집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루마니아의 전통 우물

[나무 장대끝에 물통이 매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저 장대를 잡아 당기면 물통이 우물로 들어가 물을 긷고, 손을 놓으면 물통이 밖으로 나온다.]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계 주민의 집

[루마니아의 중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헝가리계 소수민족, 독일계 사스인, 그리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함께 어울어져 사는 곳이다. 헝가리계 사람들은 루마니아 사람들보다 높은 담을 두른 집에 살고 있으며 나무집보다는 돌로 만든 집을 선호한다. 트란실바니아는 오랜세월 동안 루마니아인들이 살아오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12세기 무렵부터는 마쟈르 족이 침입하여 헝가리 제국을 세우고 이 지역을 다스리면서 루마니아 농민들을 착취하였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전쟁에서 패한 헝가리는 이 지역의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루마니아인들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았던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아 왔다. 헝가리는 자신들이 이 지역을 몇 세기간 지배했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이 지역을 넘보고 있지만, 트란실바니아는 기원전 고대 다치아 시대부터 루마니아인들이 살아 왔던 엄연한 루마니아인들의 땅이다.]

돌로 만든 야외 식탁 1

[돌로 만든 야외 식탁은 기원전 다치아 시대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다. 고대 다치아 인들은 편편한 돌을 식탁 삼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고 한다. 다치아는 지금의 루마니아 땅에 정착했던 고대민족으로 로마에 의해 멸망 되었다. 루마니아 민족은 고대 트라치아(Tracia)의 일족이며 선사시대부터 카르파티 산맥과 다뉴브 강 주변에 정착한 제토-다치아(Geto-Dacia)민족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자몰세(Zamolxe)라는 지고의 신을 믿고 있었으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들을 영원히 불멸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장에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던 용감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다치아인들은 서기 106년, 로마 트라이얀(트라이아누스 Traianus)황제의 대군에 의해 수도 사르미제제투사(Sarmigezetusa)를 함락 당하고 마지막 왕 데체발(Decebal)이 자결한 후 로마에 완전히 정복당하게 된다. 이 후 이들은 로마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과 서로 섞이며 현재의 루마니아 민족을 형성해 나갔다.]

돌 식탁

[루마니아의 곳곳에는 아직도 고대 다치아의 풍습이 남아 있다. 돌로 만든 식탁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루마니아 전통 가옥의 실내

[루마니아인들에게는 ‘경제성’이나 ‘사회성’보다는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우선순위를 점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은 호화스럽거나 휘황찬란해 보이는 세련된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과장되지 않고 무미건조하지도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서유럽에서는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력이 뒷받침 된 후에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여유를 느낀다고 한다. 그들에게 가난은 비도덕적이며 게으름의 결과로 인식되기에 집안을 장식하고 예쁜 옷으로 몸을 치장하는 등의 행위 이전에 재화를 창출하는 노동이 언제나 우선이다.  또한 경제적 이유에 의해서라면 자연적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 훼손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면 루마니아인들에게는 경제성이나 사회성보다는 미적 감성이 우선이다. 아무리 못사는 사람이라도 우선 눈에 보이는 초라한 물건으로라도 집을 장식하려 하고, 옷에 색색으로 수를 놓는 일에 몰두한다.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아무 집에나 들어가 보면 빨갛고 하얀 천으로 집안 곳곳이 장식되어 있고, 성상이나 목기(木器) 또는 작은 조각상 등 여러 가지 장식품들이 난잡해 보일 정도로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루마니아 전통 가옥의 실내 2

물레가 있는 방

루마니아 북동부 부코비나(Bucovina) 지역의 소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루마니아 인들은 옷에 화려한 수를 놓는다.]

루마니아 남동부 올테니아(Oltenia) 지방의 민속 의상

루마니아 중부 비스트리짜(Bistrita) 지방의 호라춤

[호라 (hora)는 루마니아 민속춤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춤이다. 남녀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추는 춤으로 보통 결혼식이 있는 날에 마을입구의 마당에 모여 전체 마을 주민이 함께 어우려져 즐겁게 춘다. 이 춤은 남녀가 쌍을 이뤄 박자에 맞춰 안고 돌리고 하는 춤으로 여자는 가슴 앞 부분의 옷자락을 손으로 살며시 감아쥐고 앞뒤 좌우로 경쾌하게 발을 구르며 움직이고 남자는 허리춤에 손을 대고 공중으로 폴짝 폴짝 뛰면서 여자 상대방을 인도한다. 여자들이 추는 춤은 주로 서정적이고 우아한 동시에 춤의 동작이 유연하면서 완만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히 진행되는데 여자들은,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한 목소리로 추임새를 외치기도 한다 한다. 반면에, 루마니아 남성들이 추는 춤은 힘차고 빠르다. 하늘로 뛰어오르면서 손 바닥으로 장화의 발 뒷굼치를 여러차례 때리기도 하는 등의 동작이 보는이의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다. 춤의 동작은 복잡하고 기교를 요하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루마니아 전통 자기

[촌스러워 보이지만, 루마니아인들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릇에도 다양한 무늬로 장식을 한다.]

행운의 유리병

[유리병 속에 각종 곡물을 채워 장식을 한 저 유리병은 풍성한 수확과 가정의 행운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문화'라고 하면 무언가 세련되고 다분히 인위(人爲)적인 것을 떠올린다. 거기다 현대에는 문화를 문화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문화를 우월한 문화로 대우하고, 경제적 가치가 미비한 문화를 열등한 문화로 괄시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자연의 개발과 훼손을 우려하는 측면에서 자연 친화적인 삶과 그러한 문화를 권장하려는 경향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화의 우열과 기능을 따져보려는 이러한 태도는 '문화'에 대한 개념이 서유럽의 자본주의적 관점이나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이해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잘못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화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루마니아의 문화를 형성하는 여러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살펴본 결과 루마니아 문화는 소박하며 전원적인 성격이 우세에 있고 세련되고 도시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루마니아의 문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가치도 별로 없는 열등하고 낙후된 문화로 비춰질 수도 있으며, 생태학이나 환경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범적이며 이상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루마니아의 민속 문화가 자연 중심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요소 중 첫 번째는 ‘미오리짜(어린양)의 공간’으로 칭해진 물결치는 듯 끊임없이 고저를 반복하는 카르파치 산맥 주변의 지형이며, 두 번째는 만물의 유기적 관계를 중시하고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려는 태도로 함축될 수 있는 ‘동방정교(Ortodox)의 영성(靈性 spiritualitate)’이고, 세 번째는 경제성이나 사회성보다는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감성이라 할 수 있다. 루마니아의 문화적 특성이 이러한 성향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만물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상이 루마니아 민족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